여덟 개의 질문과 답

이 인터뷰는 2012년에 서문으로 답을 받거나 비디오 형식으로 진행했다.
비디오와 서문을 통해 인터뷰에 응해준 참여자들께 감사드린다.

참여자:

인터뷰 장소: 카자흐스탄 우쓰토베 (고려인 초기 정착 마을)

1. 공 갈리나(1968) - 음악교사
2. 김 나탈리아(1952) - 음악교사
3. 김 올가(1987) - 학생
4. 김 예브게니아(1973) - 교사
5. 박 알렉산더(1991) - 학생
6. 이 블라디미르(1969) - 사업가
7. 이 스따니슬라브(1959) - 시인/화가
8. 채 스네자나(2000) - 학생
9. 카르포브 예브게니이(1991) - 학생
10. 태 스베틀라나(1989) - 학생
11. 프리호지코 나제즈다(1989) - 학생
12. 한 안겔리나(1991) - 학생

인터뷰 장소: 카자흐스탄 알마티 (카자흐스탄 구수도)

13. 박 율리안(1965) - 사업가
14. 손 세르게이(1955) - 인형극 제작/공연가
15. 김 다영(1995) - 학생
16. 김 병학(1965) - 시인/저자
17. 김 상욱(1966) - 한인일보 발행인
18. 최 알렉산드르(1969) - 뮤지션
19. 한 블라디미르(1972) - 영화감독
20. 한 알렉산드르(1960) - 작가

인터뷰 장소: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

21. 안 빅토르(1947) - 사진작가

인터뷰 장소: 한국 서울

22. 박 성미(1988) - 학생
23. 정현우(1986) - 대학조교
24. 진 달래(1989) - 학생


1. 기억에 남는 역사적인 날이 있다면 언제입니까?

- 제 생일입니다. (채 스네자나, 박성미)

- 우리 식구는 시골에 살았었는데 구들이 기억납니다. 그 당시는 침대가 없어서 구들장 위에서 모든 생활을 했습니다. (안 빅토르)

- 한국 독립기념일인1945년입니다. 책에서 읽었는데 기억에 남았습니다. (김다영)

-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후에 스승이 된 도스토예프스키와 키르케고르의 생일입니다. 제 생일과 딸의 생일도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한 알렉산드르)

- 소련이 붕괴된 해인 1991년. (김상욱, 박 율리안)

-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해인 1937년. (김병학, 이 스따니슬라브, 태 스베틀라나, 한 안겔리나, 카르포브 예브게니이)

- 우쉬또베의 바스쭈베 언덕에 있는 초기 고려인 마을입니다. 강제이주 후 제일 처음 자리 잡은 곳이기 때문인데, 그곳에서 카자흐스탄 고려 민족의 근대 역사가 시작되었고 고려인 무덤도 있습니다. 저희에겐 역사적이고 신성한 곳입니다. (이 블라디미르)

- 세계 2차 대전. (프리호지코 나제즈다, 김 올가, 카르포브 예브게니이)

- 콘소몰(공산주의 청년 동맹)* 파이오니아에 입단한 일입니다.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저는 65세인데 그 시대를 살았으니까요. 그런 역사적인 날들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김 나탈리아)

- 아블라이 칸(카자흐스탄 중부 지역의 옛 지도자, 1711-1781)의 기념비. (김 올가)

- 가족 친지의 생일과 기일. (손 세르게이, 최 알렉산드르, 박 율리안)

- 2000년에 심장 수술 때문에 서울에 갔을 때와 아버지가 돌아가신 2009년 입니다. (박 알렉산드르)

- 고려인이 연해주로 이주한 조선 말기. (이 스따니슬라브)

- 우리 나라로 따지자면 연평도 사건인데 정확한 일시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9.11 테러는2001년 9월 11일 우리나라 시각으로 제가 저녁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쯤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진달래)

- 우리나라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대부분 수동적인 삶을 사는데 저 역시 제 삶에 능동적으로 접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목적도 없이 공부만 하고 내가 해야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하고 생각한 적이 없었죠. 역사적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부끄럽지만, 대입 실패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5년 2월은 내 자신이 직접 가야 할 길을 모색하고 선택했던 날입니다. 인문계에서 갑자기 미술을 하겠다는 무모한 결심으로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두려움과 설렘을 느꼈고, 누구의 지시 없이 능동적으로 내 삶을 결정한 날입니다. (정현우)

*콤소몰 파이오니아는 스카우트와 비슷한 성격의 공산주의 청소년 단체이다.


2. 전통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전통을 따르고 있습니까? 시간이 흐르면 새로운 전통이 생긴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변치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 우리 세대는 기본적인 전통을 잊은 것 같습니다. 사회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부모도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다 보니 타민족간의 결혼이 많아졌습니다. 우리 세대는 한글도 읽을 줄 모르죠. 저에게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상형문자일 뿐입니다. 가족을 통해 제가 유일하게 아는 전통은 음식입니다. 한국음식을 먹으니까요. (박 알렉산드르)

- 전통은 사람들이 따르는 일종의 규칙입니다. 저는 한국전통을 따릅니다. 전통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한 나라에 속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새로운 전통은 계속 생기는데 다민족이 섞여 사는 카자흐스탄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한 안겔리나)

- 우리 시대에는 모든 전통이 혼합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러시아 전통을 따르는데, 옛 소련은 사라졌지만, 러시아 전통은 지속되기 때문이죠. (프리호지코 나제지다)

- 저는 제 자신을 고려인보다 카자흐스탄 국민으로 생각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서 이 곳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전통을 따릅니다. (김 올가)

- 전통은 옛 시대로부터 몇 세대에 걸쳐 전해진 것이지만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언어는 발전하고 변화하는 무척 유연한 것이죠. 카자흐스탄의 고려인이 사용하는 고려말은 이전 시대에서 멈춰있는 이미 죽은 언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전통을 따르지 않는 것도 우리에게 좋지 않습니다. (최 알렉산드르)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까 변하겠지만 수 천 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을 거에요. 예를 들면, 우리 고려인 동포들 사이에서 부모님이나 사람이 죽으면 명정(銘旌)을 쓴다는 것... 모든 사고방식, 언어, 모국어를 상실하고 우리 문화도 많이 잊어버렸지만, 자기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다시 말해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관을 쓰고... 여기 우리 고려인들의 사고방식은 러시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흡사하거든요. 그런데 관을 쓰고 그 관 위에 명정을 덮어요. 그런 것들은 앞으로 백 년이 지나든 200년이 지나든 변하지 않을 거에요. 명정도 한자로 써요. 그렇게 봐왔기 때문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서도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고 우직스럽게 쓰는 거예요. 그런 전통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에요. (김상욱)

- 자기 ‘말’이 전통이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사람이 자신의 말을 모르면 전통이 없다고 난 생각해요. 자기 말이 뭐에요? 태어나서 어머니와 할머니한테 들은 말이 전달되면 그게 자기 말이 되지요. 그러나 여기 우리 고려사람들이 쓰는 말이 사투리, 한국말 중에서도 사투리니까 사투리 말을 우리말로 생각해요. 한글 아니고 사투리. (이 스따니슬라브)

- 우리의 모든 생각은 옛 소련 왕국의 이 영토에서의 삶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조상의 역사를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유전자적인 직감을 따릅니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이 넒은 영토의 역사입니다. 한국에서는 불이 나면 족보부터 챙기죠. 족보를 챙기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입니다. 그들은 땅에서 이런 전통을 습득했죠. 우리는 다른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전통은 인공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중에서 어떤 전통이 뿌리를 내릴지 알 수 있겠죠. 새로 만들어진 전통은 몇 십 년이 지나야 자리잡고, 몇 천 년이 지나야 단단해집니다. (안 빅토르)

- 제가 생각하는 전통은 과거부터 다수에 의해 이루어진 약속, 그래서 그 틀을 깨기가 굉장히 어려운 ‘관습’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통은 어느 곳에서든 존재하는, 때문에 전통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문화나 문화재 같은 것으로만 한정되지 않고 주변의 모든 행위나 행동들 속에 녹아있어 그것을 자연히 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회 구성원이 달라지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변하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전통은 그 시대와 구성원들이 요구하는 것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이 생겨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현우)

- 전통이란 우리나라에서 지키는 매너? 예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뭐 예를 들어 아빠와 밥 먹을 때 먼저 먹지 않고 침을 삼키며 아빠를 애타게 찾는 정도는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매체 안에 새로운 전통이 생겨날 것이라고 봅니다. (진달래)

-전통은 사람들의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삶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전통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배운 대로 한국 전통을 엄격히 따릅니다. (공 갈리나)

- 전통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집니다. 가족이거나 나라일 수도 있습니다. 전통은 실행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채 스네자나)

- 전통이라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곳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듯 수많은 전통 또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전통을 생각한다면, ‘우리’라는 공동체 문화의 전통을 따라가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외국의 경우 ‘나’가 주체가 되는 전통의 삶을 따른다면, 한국의 경우 ‘우리’라는 전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면서 많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공동체사회 앞에 붙는 수식어인 ‘우리’는 점차 ‘나’로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빠른 발전으로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전통 또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속의 뜻은 변화하지만 예전의 ‘우리’라는 전통을 고집하며 일부를 괴롭히는 존재들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이 변화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것을 어떠한 방법으로 현명하게 바꾸며 살아갈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성미)


3. 현재, 혹은 현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거나 정의하십니까?

- 문화적이 되는 것. 이것이 요즘 가장 현실적입니다. (김 나탈리아)

- 요즘은 유행을 따라가야 하는데 15-20년 전만 해도 이런 개념이 없었습니다. (김 예브게니아)

- 저에게 현재는 작가로서의 현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 알렉산드르)

- 시대로 보면 현대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시작되었죠. 저희 부모님은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라서 인생에 대해서 저희와는 매우 다르게 생각하세요. 저에게 현재는 지금 살고 있는 세계인데 제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현대가 아니게 되겠죠. (한 안겔리나)

- 현대는 매일 변하는 것입니다. 실에 꾀인 채 과거를 조금씩 더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 블라디미르)

- 새로운 문화와 기념비, 예술입니다. 예를 들어 아스타나에 지어진 카자흐스탄문화센터(Bayterek)는 현대의 건축물이죠. (카르포브 예브게니이)

- 소통을 하고 싶어 미쳐 날뛰는 것 같아요. 매체로 이루어지며 서로가 서로를 다 아는 것 마냥 위로와 기쁨과 슬픔과 공포를 나누며 획일화 되게 만듭니다. (진달래)

- 현대적이란 교육을 받고, 관대하며 인간적인 걸 뜻합니다. (공 갈리나)

- 저에게는 현실입니다. 제 생활에서 매일 보는 모든 것, 특히 제 가족입니다. (박 율리안)

- 현재는 선택이라는 단어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과거를 이해하고 반성하여 그것을 반면교사 삼으며, 이를 토대로 올바른 방향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준비하는 과정을 현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에는 끝없는 문제와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한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미래는 현재가 되고 현재는 과거가 되는 반복적인 과정들 속에서 현재는 그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현우)

- 과거의 조각이고 밝은 미래를 위한 희망입니다. (김다영)

- 삶이고 진보를 향한 욕망입니다. (최 알렉산드르)


4. 국민성 외에 또 다른 중요한 정체성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구소련 시절은 다른 상황이었는데 우리는 특정 소수민족이란 걸 의식했습니다. 저는 타쉬켄트의 Kuylyuk 에서 자랐는데 그 당시는 법보다 범죄가 많았죠. 이 지역의 거의 모두가 고려인이었는데 시골보다 훨씬 더 대담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이 레닌그라드부터 알마티까지 구소련 체제의 모든 고려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겁니다. 꽤 유명한 곳이었죠. 한국에 6개월 동안 살았는데, 한국어 속에서 지내다 보니 이곳이 그리웠습니다. 한국어로 말하면서도 러시아어로 생각했으니까요.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항상 반에서 제일 키가 작았는데 한국에서 저보다 작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저보다 작은 남자가 전혀 위축되지 않았는데 그건 자아가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족도가 이곳보다 훨씬 강하죠. 자신들의 영토에 살다 보니 콤플렉스가 없어요. 소련체제에서 우리는 우리 땅이라든지 집이라든지 그런 느낌이 없었어요. Kyulyuk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던 건 우리의 주먹 때문이었죠. (안 빅토르)

- 마르크스주의와 레닌주의에 대해 공부했었는데 레닌의 ‘국가의 자기결정권’ 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조국(한국)과 멀어졌고 고려인은 이곳의 여러 민족에 융합되어 ‘고려사람’은 이미 사라진 나라입니다. 포스트 소비에트의 한 나라일 뿐입니다. 국민성은 가족과 직업의 정체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박 율리안)

- 국민성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김 예브게니아, 박성미)

- ‘나쁜 사람은 없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라고 한 성인이 말했습니다. 국민성은 자신의 뿌리를 이해하는데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 개방적이고 어디든 돌아다니는 ‘세계 속의 사람들’이 있죠. 아쉽게도 전 그들 중 한 사람은 아닙니다. (한 블라디미르)

- 국민성은 더 이상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세계화 과정 속에서는 다른 정체성들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이제 정체성은 취미, 종교, 직업, 성격과 정신세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김 올가, 한 안겔리나, 손 세르게이, 이 블라디미르, 최 알렉산드르, 프리호리코 나제즈다, 박 알렉산더, 한 알렉산드르, 공 갈리나)

- 정체성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국민 정체성이고, 그 다음에 민족 정체성이 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정체성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정체성으로 말하자면, 우리 같은 한국사람은 정체성 가지고 고민할 사람이 별로 없어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다문화시대, 다민족이 되어가는 추세지만, 어쨌거나 지금 우리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국민정체성과 민족정체성이 같아요. 그런데 중앙아시아, 당장 여기 고려인만 봐도 국민정체성은 카자흐스탄 국민이에요. 러시아의 그 유명한 전통 목각인형(마트로슈카) 아시죠? 이렇게 뚜껑 열면 더 작은 거 나오는 거. 그 정체성이 여러 개가 한군데 모여 있는 상태로 저는 고려인을 보고 있어요. 맨 겉에는 카자흐스탄 국민. 왜냐면 맨 겉에 있는 정체성이 얼굴을 대표해요. 대표하지만, 또 가장 바뀌기 쉽지요, 속보다. 여러 가지 세월의 비바람을 겪으며 마모도 잘되고.
카자흐스탄 국민의 정체성이 가장 첫 번째라는 이유는 국민정체성이 그 사람들의 법적인 권리와 의사능력을 다 규정 해주거든요. 그래서 이 정체성이 더 클 수 밖에 없어요. 그걸 열어보면 그 안에 소련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요. 옛날 소련이라는 나라가 세워질 때, 고려인들이 연해주에서 같이 피를 흘리며 싸웠어요. 또 가장 중요한 게 소련 시대의 공통언어인 러시아어가 이미 모국어가 된 거에요. 언어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이미 결정해 버리죠. 그래서 우리 고려인들이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상 소비에트 정체성이 길게 남아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지만 맨 안쪽 뚜껑을 열어보면 고려인일 수 밖에 없죠. 여기서 다른 민족들에 의해서 반드시 타자화가 되는 거에요. 무슨 민족인지 외모로 나타나니까요. 그래서 고려인들은 이 세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요.
여기서 내가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인들처럼 한 국가에 살고 민족의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우리의 조국이 곧 모국이에요. 모국이란 말이 어머니죠. 어머니가 뭡니까? 신성한 존재고, 바꿀 수 없고, 거룩한 존재,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어머니를 바꿀 수 없죠. 여기 고려인 같은 경우는 모국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에 어머니라는 절대성이 상대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거에요. 두 개 이상의 정체성이 들어오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요? 어머니가 아니라 이제 아내가 되는 거에요. 아내. 우리가 어머니 앞에서는 투정을 부릴 수도 있고 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고 그렇지만 아내 앞에서는 그럴 수 없죠. 서로 노력해야 되고 맞춰줘야 되고 헌신해야 되죠. 또 아내가 뭡니까? 해선 안될 말이지만, 끝까지 행복하게 서로 살아야 되지만, 정 안되면 바꿀 수가 있죠. 그러니까 여기 고려인들의 정체성도 그런 상태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아내다, 바꿀 수 있는 정체성이다. 그것이 한국에 사는 우리와 차이가 난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김병학)

- 내가 원래 여기서 태어나서 카자흐스탄 사람이지만, 그러나 내 피는 고려인피죠. 여기 고려사람들이 제 아이들한테 전달해주는 게 본(本). 고려사람들은 여기서 자기 본 모르는 사람은 드물어요. 중요한 것 같기 때문에. 왜냐하면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면 꼭 명정을 쓰죠. 명정을 쓸 때 꼭 본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이걸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꼭 전달해주죠. 정체성은 두 가지에요. 여기 카자흐스탄 사람이고 피는 고려인 사람이니까. 아주 중요한 것은 남아있고, 계승 받아서 잊어버리고 않고 전달해주죠. (이 스따니슬라브)

- 성? 저는 아직도 어렸을 때 설날에 여자란 이유로 우리 오빠보다 세뱃돈을 적게 받은 것이 화가 나요. (진달래)


5.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어느 나라에서 살고 싶으십니까?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저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살고 싶습니다. 제 꿈은 프랑스 대회에 출전해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채 스네자나)

- 한국입니다. 제 모국이지만 역사나 전통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어서 그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김다영)

- 저는 마이애미의 햇살과 바다가 좋습니다. (프리호지코 나제즈다)

- 현재는 중국인데 제가 그곳에서 4년 동안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계속 성장 중이고, 중국의 모든 것이 만족스럽습니다. (태 스베틀라나)

- 저는 비엔나에서 살고 싶은데 이곳에 대해서 많은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카르포브 예브게니이)

- 솔직히 저는 카자흐스탄에서 살고 싶습니다. 알마티가 좋으니까요. 정치나 지배구조, 정부의 부패 등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만약 이런 것들이 다 바뀐다면 카자흐스탄이 좋습니다. 자유로운 나라인 캐나다도 좋습니다. (한 안겔리나)

- 저는 여기 카자흐스탄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김 올가)

-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았고 한국인들과는 사고방식이 많이 다릅니다. 예전엔 역사적 조국인 한국에서 살고 싶었는데 한국에 몇 번 가보고 나니 굳이 거기서 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은 문화와 전통으로 우리를 키우셨지만 우리의 삶은 매우 다릅니다. (김 예브게니아)

- 저는 서구화된 나라, 한국이나 미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저 같은 창의적인 사람들의 가치를 더 인정해주고 저의 음악을 알리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알렉산드르)

- 흔한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조국이란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이주하지 않는 이상 어머니의 모유처럼 태어나자마자 부여되는 것이죠. 사람에겐 태어나고 자란 곳이 중요하기에 저는 이 곳에 머물고 싶습니다. (이 블라디미르)

- 어디든 돈만 많으면 편할 것 같습니다. (진달래)

- 예전 같았으면 장소를 말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이 나이가 되고 여기서 사는 게 익숙하다 보니 가고 싶은 곳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지리학자라는 직업상 저는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 유목민적인 삶을 좋아했었습니다. (손 세르게이)

- 저랑 비슷한 경험의 사람들이 많은 미국에서 살고 싶습니다. (한 알렉산드르)

- 북유럽의 어느 나라라도 상관없습니다. 굳이 꼽으라면 핀란드나 덴마크를 꼽고 싶습니다. 그들의 복지나 제도는 둘째 치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전반에 관한 인식이 부럽게 느껴집니다. 특히 어느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직업에 관한 그들의 제한적이거나 편협하지 않은 사고와 교육에 관한 자세는 저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정현우)

- 남쪽에 살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을 서너 번 갔었는데, 어떤 고장에서 스님으로, 아니면 농사지으며 살고 싶어요. 그런 삶이 부러워요. 아니면 바다 옆에서. 내 안의 조국이 날 부르는 것 같아요. ‘살아볼래?’ 하고. 다른 데는 다 남의 나라 같고. 한국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내 어린 시절의 고려인 마을이 기억났어요. 똑같았어요. 할머니들 모습도 똑같고. 꼬부랑 할머니를 처음 봤어요. 여기서 꼬부랑 할매들을 본 기억이 있는데, 30년이 지나서 50살에 한국 광주의 시장에서 꼬부랑 할매들을 봤어요. 금방 어린 시절의 할머니들이 생각났어요. 별로 차이가 없어요. 시골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이야기도 나눠보니, 어린 시절과 똑같았어요. 제가 만약에 한국의 시골에서 살게 되면, 어린 시절을 다시 관광하는 느낌일 거에요. (이 스따니슬라브)

- 저는 나름 예술가로서 시끄러운 한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술가가 예술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불안정한 상태의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불안정한 사회를 인식하는 것에는 롤모델이 될만한 많은 나라가 존재합니다. 만약 선택을 한다면, 미국 뉴욕에서 살고 싶습니다. 최고의 선진국인 미국의 발전된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박성미)

- 저는 로스엔젤레스가 좋습니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봐서 거기에 끌리는지도 모르죠. 만약에 여기서 제 삶을 꾸려갈 수 있으면 미국이나 런던 같은 곳에 갈 필요도 없지만요. (박 알렉산드르)


6. 미래를 어떻게 느끼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하십니까? 당신의 미래나 전반적인 미래에 확정적인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우리의 정치상황에선 아무런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부는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없죠. 글로벌적인 문제인데 아무런 답이 없어요. 제가 졸업하고 나서 어디로 갈지도 모르겠는데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겠어요? 제 미래는 ‘어디로?’ 라는 질문입니다. (박 알렉산드르)

-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언가 바뀌어야겠죠.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대로 지속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변화로 인해 카자흐스탄이 풍요로운 나라가 되는 것이죠. 저는 제 미래를 카자흐스탄의 함께 생각하는데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제 능력을 보태고 싶어요. (한 안겔리나)

- 미래의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될 거에요. 기술이 발전해서 얼마 전 ‘Time’이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시간이 될 겁니다. 사람들이 굉장히 진화할 겁니다. (김 올가)

- 미래는 노후입니다. 제 노후를 생각하면 산속의 집이 생각나는데 반드시 한옥이었으면 합니다. 장소는 아직 모르겠어요. (한 블라디미르)

- 우리는 모두 지구에서 같은 길을 가죠. 시간이 변할 뿐이고 함께 역사를 써나가는 겁니다. 미래에는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인터넷이나 소셜 네트워크가 인간의 삶 속에 침투해있을 겁니다. 사람은, 실은 변하지 않죠. 5세기나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던 시대나 인생, 사랑, 허영심, 가족 이런 것들은 다 똑같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새롭게 변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 알렉산드르)

- 미래에는 나라들 간의 차이가 모두 사라질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세계는 변할 겁니다. 민족이나 국가의 구분이 없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런 구분이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주도 자유롭겠죠. 경제적으로 통합된 다국적 기업들이 더욱 성장할 겁니다. 제가 볼 때 이것은 긍정적인데, 이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미 이런 방식으로 성공을 거둔 이웃국가들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와 경제 체제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발전에 대한 예측을 고려하면 삶이 나아질 겁니다. (이 블라디미르)

- 우리의 상황에 연관 지어볼 때, 저는 미래를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어딘가의 심연 속으로 사라지는 거죠. 현재는 도덕은 사라지고 돈이 우선시되는데, 이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끔찍합니다. (손 세르게이)

- 옛날에 공자님이 ‘온고지신’이라고 했죠. 옛 것을 살펴서 새로운 것을 이롭게 해 나가는… 그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는 거죠. 우리의 과거가 없으면 미래가 있을 수 없죠. 물론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따지면 과연 시간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시간 자체가 흐르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화살에 비유하고,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고, 벡터 한 방향에 비유하지만, 사실 시간은 공간처럼 참 정의하기 어려운 거죠. 시간 자체는 아무런 개념도 없는데 변화의 실상, 계절의 변화나 늙어가는걸 보면서 우리가 역으로 시간이란 개념을 생각하는 거에요.
일반적인 시간 개념에서 보면, 우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일 해왔는가에 의해서 미래가 보이는 거죠.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결정되겠어요? 당연히 지금 우리가 현재 시점에서 얼만큼 치열하게 국가와 사회, 민족, 삼라만상 모든 존재를 위해서 사고와 의식을 확장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 미래라는 것은 그만큼 더 아름답게 열리는 게 아니겠어요?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한 말이 있어요. 지금 현재의 삶을 누리는 우리가 미래를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개선해야 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그건 우리의 현재 사고의 시점을 죽음의 순간까지 끌어올리면 된다는 거에요. 그 죽음의 상태, 즉 최종적인 미래의 관점에서 지금 현재의 삶을 조망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또 어떤 방향으로 나갈 수 있을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과거를 미래로 살고 미래를 과거로 살고 이렇게 교차로 과거와 미래를 생각 해보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될지 결정할 수 있고, 현재 삶의 방식을 더 미래지향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김병학)

- 제 미래는 제가 쓰는 책입니다. 더 이상 아이디어가 없으면 제 인생은 급격히 변할 겁니다. (한 알렉산드르)

- 미래에 언덕에서 황천을 봤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만약에 청년이면 꿈이 있겠지만, 오십 살이 되니까 벌써 그 생각이 많아요. 돌아가는 게 무섭고 고통스럽고 그렇지 않아요. 음양을 보면 하얀 게 있으면 검은 게 있고, 삶이 있으면 죽는 게 있고 그렇잖아요? 죽는 게 안 무섭고 나이 먹으니까 그 생각이 자주 나요. ‘내가 이 인생 짧은 세월을 올바르게 살았나? 하느님 앞에서 재판할 때 답할 수 있을까?’ 제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요즘 21세기는 정보시대죠. 인터넷, TV방송에서 이세상의 끝, 마지막이라고 너무 그러니까 그런 정보를 들으면서 정말 그 느낌이 들어요. 이 세상이 마지막 같아요. 왜냐면 여기 오는 사람들이 너무 악해, 이 세상 사람들이. 그리고 인간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어요, 문학이나 이런 면에서. TV에서 보면 그저 돈만 알고.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미래가 없어도 괜찮아요. 다 중요하지 않을 거에요. 이 세상이 있으나 없으나. 미래가 안보이고, 없어도 괜찮아요. (이 스따니슬라브)

- 저는 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나을 겁니다. 미래엔 모든 것이 잘될 거에요. (태 스베틀라나)

- 미래는 아름답고 밝고 맑을 겁니다. 색색으로 밝은 거죠. 도시에서 산업건물들이 사라질 거란 느낌이 들어요. 수많은 꽃과 새들이 있고, 사람들은 행복할 겁니다. (김 예브게니아)

- 미래는 현재를 바라보고 예상 가능한 것을 추측해보는 명확하지 않은 결론입니다. 미래학자들이나 그 외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여러 이론을 앞세워 미래를 예측하지만 그것은 확률 높은 가설일 뿐 확정할 수 없는 것들이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안한 현재를 벗어나려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현우)

- 미래에는 모든 국가의 경계가 사라져서 우리 후손들은 세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겁니다. (김 나탈리아)


7. 오늘날 ‘미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 새로운 기술입니다. 미래는 지금입니다. (카르포브 예브기니이, 최 알렉산드르, 안 빅토르, 김다영, 김 올가, 공 갈리나)

-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자신의 안에서 찾는 거죠. 스스로를 이해한다면 모든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게 되는데 그게 지금의 미래입니다. (한 블라디미르)
- 뭐 단적인 하나의 예로는 지금 현재 올림픽 같은 것도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서일 수도 있어요. 저는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는 그 이면에서 우리의 미래를 많이 발견해요.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객관적인 상황이나 신체적인 불리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거에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내부에 내재되어 있는 그 관념만 깰 수 있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어떤 주객관적인 상황, 또 우리 사회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객관적인 상황들도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라는 것을 올림픽 경기에서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모습을 통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상욱)

- 저의 다음 아이디어입니다. (한 알렉산드르)

- 저는 시를 지으니까 그래도 미래에 남아있는 것은 시. 그러니까 오늘 내가 지은 시 한 줄이라도 남아있으면, 그게 내 미래 같아요. 나도 미래에 살아있는 게 되는 거죠. (이 스따니슬라브)

- 우리의 젊은이들이 미래죠. 우리와는 다르게 훨씬 똑똑하고 외국어도 알고 어떤 학교에서 배울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데, 부모들은 오히려 잘 모르기 때문에 참견하기가 어려워요. 우리와 다음 세대 간의 큰 간격이 느껴집니다. (공 갈리나)

- ‘분단’이란 것은 한국의 현실이기도 미래이기도 합니다.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 좌파와 우파간의 갈등, 자신들만의 이익을 따지는 외부의 나라들… 이러한 문제가 한국의 확실한 미래인 것 같습니다. (박성미)


8. 앞으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은 무엇입니까?

- 세계의 종말. 우리가 죽지 않는 일. (프리호드코 나제즈다, 최 알렉산더, 김 예브가니이, 손 세르게이, 한 블라디미르, 김다영, 태 스베틀라나)

-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은 없습니다. (김 올가, 이 블라디미르, 한 안겔리나, 김병학, 김상욱, 박 알렉산더)

-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을 예상하는 일. (정현우)

- 영혼의 죽음입니다. 저는 이미 제 책 속에 살아있습니다. (한 알렉산드르)

- 전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전 확신합니다. (공 갈리나)

- 절대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정치문제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람은 항상 자신의 이익을 따지며 살아가기에 정치문제는 항상 존재할 것입니다. 정치문제가 없는 사회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박성미)

- 하느님이 자기 모습을 안 보여줄 겁니다. 이 사실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하느님을 우리 사람들이 못 볼 거에요.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말이죠. 하느님이 제 생각엔 우주같이 너무 크고 무한합니다. 그에 비해, 사람은 벌레 같아요. 벌레 같은 사람이 하느님을 느낄 수는 있지만 보이나요, 아니면 목소리가 들리나요? 우리가 벌레를 보고 말하면 벌레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 스따니슬라브)

- 인간의 평등은 절대 없을 겁니다. (김 나탈리아)